들꽃 글방

냉동고

들꽃 장광순 2024. 8. 31. 01:42
냉동고ㆍ들꽃 장광순 
 
 
냉장실에 비해서
턱없이 좁은
냉장고 냉동실 
 
늦가을 바리바리
들여놓은 대봉감
말랑말랑해질 즘
모셔 온 냉동고 
 
고등어
조기를 시작으로
가지 말린 거
호박 말린 거
브로콜리 반 개
양배추 반 조각
마늘종 데친 거 
 
맨 마지막 칸
채소 다듬은 부산물까지
별의별 게 다
자리를 차지한다 
 
껍질 벗길 때 눈물 콧물
줄줄 흘리게 했던 양파
양파는 잘 있겠지
매운맛 쏙 빠지고
단물만 남아 있겠지 
 
흐르는 세월에도 툭툭
튀어나오는 까슬한 성미 
 
냉동고에 넣어두면
부드러워질까
좀 매끄러워질까 
 
-시집 (들꽃 향기 머무는 길목) 중에서-
 

'들꽃 글방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궁금하다  (0) 2024.08.31
안개 자욱한 길 위에서  (2) 2024.08.31
여름밤  (0) 2022.09.02
초여름  (0) 2022.09.02
비밀의 숲  (0) 2022.09.02